* 2018년 미지북스에서 나온 천관율의 [천관율의 줌아웃]에서 관련된 내용을 정리함.

<박근혜 탄핵의 의의> 
직선 대통령제에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현실적인 견제수단이 없었다. 시민이 직접적으로 통치자를 끌어내리는 '수직적' 견제나,  입법부를 통해 통치자를 압박하는 '수평적' 견제 모두 한국에서는 효과가 미미했다. 탄핵 과정에서 100만 인파가 보여준 고도의 합의와 규율은 폭력이나 충돌 없이 '수직'은 기각하되 '수평'을 압박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주권자로서 혁명과 같은 반정치를 택하지 않고도, 제도 내에서 입법부를 압박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여기에 지난 2008년 촛불의 실패가 본보기가 된 것은 물론이다.

<박근혜의 용인술> 
대통령은 사람을 쓰는 것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이므로, 용인술은 대통령을 평가하는 지표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청와대(1979), 영남대(1988), 육영재단(1990) 등을 거쳤으며, 박근혜는 조직의 말단이었던 경험 없이 쭉 리더로 살아왔다. 모든 조직에서는 '비선' 과 '공식' 라인 간의 갈등이 있었다. (최태민, 최순실, 정윤회 등등) 책임지는 사람과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갈등을 피할 수는 없었고, 박근혜는 이 모든 조직에서의 갈등 관리에 실패했다. 대한민국은 30여 년 동안 이런 용인술을 펼쳐온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결국 박근혜는 청와대에서도 '비선 실세' 논란으로 쫓겨났다.

<박근혜와 세월호> 
선원법에 의하면 선장은 모든 승객이 내릴 때까지 배를 떠날 수 없다. 세월호는 이 시스템이 무너졌기에, 많은 이들이 선장에게 분노했다. 국가를 배로 비유했을 때, 정부의 시스템 역시 완벽히 붕괴되었다. 정확한 상황 파악 및 초기대응에 실패했고, 낙관론에 취한 언론은 이를 검증 없이 퍼 날랐다. 사건 발생 6시간 후 대책본부에 나타난 대통령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혼선과 축소, 은폐, 거짓은 반복되었으며, 가족들과 여론은 분노했다. 이와 중에도 헌신적인 몇몇의 희생이 있었기에 피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사고 이튿날, 대통령은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다."라고 단호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는 사실 단호한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 자리에서 단죄자의 자리로 탈출한 것에 불과하다. 선장이 그랬듯, 대통령 역시 침몰하는 시스템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

<박근혜와 메르스> 사실 이건 박근혜 정권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딱히 따로 뗄 부분이 없어 같이 넣었다.
메르스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메르스가 들어온 것은 방역/보건 당국의 실패라면 메르스가 국내에서 확산되는 과정은 시스템의 결함이었다. 1번 환자가 감염병 진단을 제시간에 받지 못한 것은 감염내과가 최소화되고 부족하기 때문이다. 리스크 관리자는 평온할 때 푸대접을 받기 마련이지만, 한 해에 3000명의 의사가 탄생하는데 그중 감염내과 전문의는 191명에 불과하다. 울산은 감염내과 전문의가 1명이다.

한국의 6인실과 가족 간병 관행 역시 메르스 확산의 주 요인이다. 당시 6인실까지밖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6인실 초과는 비용 문제가 발생했다. '감염 관리를 위한 1인실'은 '비용 최소화를 위한 다인실'에 밀렸다. 간병 역시 의료기관의 전문 영역이지만, 그동안은 가족에게 떠넘겼다. 간병은 수가로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시 비용 문제다. 정부가 해결책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포괄간호제'인데 의료계는 추가 비용의 보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포괄수가제는 문재인케어에 포함되었으며, 나 역시 비판적이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보험 적용 범위를 늘리는 방안은 '건보료 저항'과 강하게 충돌한다. 그러나 확실한 건 안전에는 돈이 든다는 사실이다. 안전 비용을 대충 얼버무리는 오래된 습관이 다시 폭로되었다. 리스크를 무시하는 방법은 그 이후에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에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건 때도 계속되었다.

<박근혜와 국정교과서>
자유주의는 인간의 지식이 불완전함을 대전제로 한다.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야 한다고 본다. 진리를 위해서는 자유가 필수다. 존 스튜어트 밀은 국가의 교육 통제는 사람들을 똑같은 틀에 맞춰 길러내는 것이며, 틀 속으로 집어넣으면 넣을수록 최고 권력자는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근데 한국의 보수가 내건 가치가 "자유주의"이다.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민족정신이 잠식당할 수도 있다."라고 말하며 국정교과서 진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근데 이 생각은 자유주의와 매우 멀고, 전체주의와 가깝다. 

이런 모순을 감추기 위해 보수는 '시장실패'를 말한다. 교학사 교과서가 그들 주장대로 시장에 나왔다가 처참한 평가를 받고 사라졌다. 좌편향된 역사학자와 전교조에 세뇌당한 학생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보수 오피니언 리더들은 '역사 교과서 시장에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기조의 의견을 쏟아냈다. 자유주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므로 일시적인 정부 독점이 필요하다? 한국의 보수가 내건 가치는 분명 "자유주의" 다.

역사의 해석에는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자유 경쟁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 독점은 이를 불가능하게 한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지지한 국정화는 박근혜로 하여금 총선 패배를 겪게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으며, 대통령이 권위주의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유권자에게 공유시켰다고 볼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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