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문학동네의 이 시리즈에 대해서 짤막하게 소감을 적었었는데, 독서토론의 스크립트를 정리할 겸 리뷰를 적고자 한다. 두괄식 한줄평은, "오늘의 문학은 오늘을 사는 작가들의 이야기여야 한다." 조정래의 [한강]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배운 것도, [정글만리] 이후에 조정래를 읽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꽤나 오랫동안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고전, 그리고 대가들의 작품을 읽는데 집중했었는데, 굳이 지루함을 참아가며 명성에 압도될 필요 있나 싶다. 젊고 재능있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내게는 훨씬 더 와닿는다. 괜히 센치해져서 한강에 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일상의 재밌는 조각들을 글로 다듬기도 하는 포인트가 된 책이며, 덩달아 최근 3년간 수상작들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문학동네가 그래도 이름값을 하는구나. 기대된다. 물론, 수상작 모두가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기에, 혹시라도 자신의 소설을 검색했다가 여기까지 들어왔다가 나한테 악평을 듣게 된 이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세실, 주희> by 박민정 

해설을 보니, 제목에 이름들을 나열하는 것은 전통과 의미를 가진 행위라고 한다. 읽은 후에 곰곰히 생각해 봤을때, 꽤나 합리적인 설명이다. 세실, 주희보다 이 작품을 잘 서술할 수 있는 제목이 있을지 궁금하다. 주체와 이데올로기에 관한 쓸데없이 거창한 해설은 집어 치우고, 둘은 서로 하나의 짝궁으로서 단단하게 이야기를 채운다. 해설에서 건질만한 건덕지는 "무저항의 저항성" 이라는 표현 뿐이었다. 방관을 통해 자위하거나, 안심하거나... 매일 내가 하는 짓거리 아닌가?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상대방 안에서 발견되는 나의 비밀스러운 모습, 나의 약점, 내가 부인하고 싶은 나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리고, 세실과 주희 모두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다. J까지 총 세 명의 우상(동경)과 자신감(장점), 그리고 비밀(약점)이 어우러지면서 아주 쫀쫀하고 탄탄하다. 유달리 병신같은 한국의 페미니즘과 달리 여성의 상처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도 현.대.문.학 혹은 현.대.소.설로서의 가치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by 임성순 

장르물을 표방했으면 최소한 장르물로서의 본분은 다해야 한다. 대다수의 병신같은 한국영화처럼 신파 한 스푼, 국뽕 한 스푼... 이러면 안된다는 거다. 이 작품은 제대로 쓴 공포소설이며, 짧고 굵다. 그리고 그 공포스러운 서사 끝에서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주인공이 각성하는 순간이 엄청난 청량감을 선사한다. 특히 나는 공포물을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서, 내게는 딱 선을 잘 지키는 작품이었다.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상당히 쫄깃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는 태생적으로 미술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나에게는 미술적 재능이라는 것이 티끌만큼도 없지만, 나의 사랑하는 작은아버지가 화가시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하는 분이 몸담고 계시는 한국 미술계에 대해 공부한 흔적이 역력해서 뿌듯하기도 했고, (나 주제에 감히) 기특하기도 했다. "미술과 자본은 서로의 영역을 무한히 침투하며 되돌아온다." 라는 표현이 특히 맘에 들었다. 내 생각에 안 그런 분야가 전무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이해관계> by 임현 

후회는 너무 아프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그렇다. 소설은 다소 난해했으나, 혼자 외로워 죽으려고 하는 작가노트가 맘에 들었다. '내 삶에 비극은 없겠거니' 라고 여기는 태도. 언젠가 한번 좆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겪었다. 충분히 겪었다. 이제 그만 겪고 싶다. 단순한 휴머니즘이나 뻔한 기승전결에서 벗어나 '너도 똑같잖아.' 라고 고민할 지점을 준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해설의 '인간의 자성'에 관해서 공부해보고 싶게 만든다. 


<더 인간적인 말> by 정영수

 이런 매력적인 소재를 가지고 겨우 이거? 처음의 와꾸를 잘 짰기 때문에 더더욱 아쉽다. 한 명은 A의 극단, 한 명은 B의 극단에 서서 꾸역꾸역 캐릭터를 잡는 것 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다 갑자기 이모의 죽음 앞에서 갑남을녀가 된다. 오디오 프로그램의 이펙트 중에 '컴프레싱'이라는게 있다. 중구난방인 중역대를 가운데를 중심으로 뭉치게 압축해주는 것인데, 컴프레싱이 과하면 그만큼 소리의 끝이 죽고 뻔한 소리가 된다. 보통의 소리 근처에서만 맴돈다는 뜻이다. 

 

<가만한 나날> by 김세희 

현대소설이면, 좀 이런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물론 쉽게 공감을 사는 대신 깊이가 없다고 깔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든 주변의 이야기든 "현대"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 작품을 정말 높게 산다. 네이버 블로그에 관한 내용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관계자, 실무자의 경험에 기반을 둔다. 그리고 난 그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도서관 가는 길의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열심히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수상집에서 이 작품을 최고로 꼽지 않은 것은 <세실, 주희>에 비해 보편성은 좀 떨어진다고 생각해서다. 내게는 최고지만, 남들에게도 그럴까? 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열정이나 정성이 식는 대신, 전형적인 직장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간결하게 잘 그려냈고, 네트웍 마케팅 / 대기업의 횡포와 그들이 숨고 다시 헤쳐 나오는 프로세스 / 네트워크 마케팅이나 옥시의 살균제 같은 시의적인 소재 / 평범한 너와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적당한 도덕적 질문 등등... 전형적인 공식들이 있는데도 몰입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작가의 재능 아닐까? 김세희 작가가 혹여라도 이 글을 보고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괜시리 많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보답하고 싶다. 

생명에 합당한 보상이 있나? 아니 굳이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 가능한가? 보상이란 것은 그것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일수록 훨씬 쉬운 것 같다. 그런 부분에 대해 자문하게 만드는 깊이도 탁월하다. 

예를들어, 누군가의 연락을 받지 않는 것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도 나 때문에 이렇게 괴로웠겠구나.' 라고 느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수는 있는데, 그걸 어떻게 보상하지? 단순히 우리의 관계가 갑을이 아닐 때 더 피곤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치약이 그랬고, 살균제가 그랬고, 갑질 대기업의 유제품을 사먹지 않는 등등... 어휴... 깐깐하게 살려면 전나게 피곤하다. 

"일을 못한다고 낙인 찍힌 얼굴" 이라는 표현 정말 사랑한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 위축되지 않고 지금의 좋은 리듬을 찾는 일에 평생을 쓴 것 같다. 너무 어려운 일이고, 우리 사회는 너무 빨리 결과를 요구한다. 모든 새내기들, 신입들 힘내길. 


<한밤의 손님들> by 최정나 

정말 이상하게도 더럽게 안 읽혔다. 총 네 번정도 시도해서 겨우 읽어냈다. 시점의 이동이 너무 홱홱거려 불편했다. 조금 더 불친절한 버전의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느낌이 든다. 난 개인적으로 에드워드 호퍼에 관해 안 좋은 기억이 있는데, 이런게 사람 인연이다 싶다. 이 분의 글 쓰는 스타일도 그렇지만, 이 분이 고르신 소재까지 그냥 나랑은 안 맞는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by 박상영 

해설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예쁜 말만 골라 하고, 조심하는 것 자체가 동정이고 연민이다 뭐 그런 뉘앙스의 표현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분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안 준다는 가정하에, 그들의 선택도 자유고 그냥 그 분들이나 나나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대신, 그들의 표현의 자유 만큼 그들 외의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도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좆같은 한국사회에서는 그들에게도, 그들 외의 사람에게도 뭔가 이상한? 제약이 있는 느낌이다. 

무튼, 이 분도 이런 소설을 맘대로 쓰셨으니, 나도 맘대로 리뷰를 하자면, 그냥 한심하고 역겨운 게이들의 이야기다. 수상집은 상의 무게가 큰 순서대로 배치되는데, 이 작품이 왜 맨 뒤에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물론 이런게 왜 상을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작중에 "주인공이 게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색도 가치도 없는 그런 영화"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딱 두 음절만 바꾸면 완벽한 한줄평이 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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