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노홍철 님(이하 노홍철)이 얘기하시는 영상을 두 편 봤다. 나는 고등학생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토요일만큼은 꼭 집에서 무도를 본방 사수하던 무도와 노홍철의 광팬이다. 이 글은 노홍철이나 그의 메시지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없다. 다들 알다시피 노홍철은 '좋아 가는 거야' 같은 무한 긍정의 사나이다. 최근 본 영상들에서는 썸네일에 나왔듯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라는 메시지를 주려 한다. 음주운전으로 무도에서 하차한 이후에는, 책방을 내고 작은 규모의 방송에만 출연하며 조용하게만 지내는 줄 알았는데, 바깥으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2. 나 역시 20대 후반에 한 번 큰 실패를 겪기 전까지는 노홍철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좋은 기억이 몇 없는 미완의 대학생활 중, 스피치 수업에서 '그냥 해봐요'라는 주제로 내 삶을 담담히 풀어내 A+을 받았던 일은 정말 행복하고 뿌듯한 기억이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집안 상황 때문에 복학을 못하고 일을 했다. 어린 나이에 꽤나 큰돈을 만지게 되고,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다시 도전하고, 작은 실패를 겪었다. 그리고 복학하여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고, '거의 다 왔다'하는 순간에 맞은 큰 실패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나는 꼬박 1년을 술과 정신과 약에 절어 누워 시체처럼 지냈다. 그러다 정말 감사한 기회를 통해 겨우 일어나 살면서 지금의 나는 27살의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3. 원래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젊은이에게만 해당되는 명제가 아니다. 60세부터 인생이 끝난 줄 알고 시간을 허비하다 70세에 일본어를 공부하고 나서 크게 후회했다는 어느 노인의 이야기는 내가 늘 되새기는 얘기다. 늙음과 젊음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는 의지의 문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홍철이나 27살의 나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몰라서 못할까? 성격상 안정지향인 성격도 있겠지만, 나는 사회와 환경의 원인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이 되는 것이 대다수 젊은이들의 목표인 나라에서, '도전'과 '실패'는 너무나도 위험한 주제다. 퇴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중장년층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다.

 

4. 내 삶의 작은 실패는 어머니께서 선물해주신 유럽 여행으로 이겨냈다. 한 달 동안 600만 원을 쓰고, 외국인들과 재밌게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에서의 내 실패가 아주 작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삶의 큰 실패 역시, 내가 일과 학교와 나의 독립된 거주공간을 포기하고 한창 자리를 잡아갈 나이에 빈털터리로 기댈 곳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내가 모아놓은 돈이 싹 떨어지고 나서도 (도움이 안 되긴 했지만) 상담을 몇 번 더 받았고, 정신과 약에서 약도 타 먹을 수 있었다. 엄마는 때때로 내게 30만 원씩 넣어주셨고, 나는 전화비랑 담뱃값 빼고는 쓸 곳도 없었지만 덕분에 가끔 혼자 소주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전화비를 내지 않았더라면, 내 영상을 보고 나서 전화를 달라던, 나를 이 길로 이끌어준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기다려주고 응원하고, 믿어주신 어머니의 지혜와 인내, 사랑에 정말 감사한다. 그렇지만 위에서 썼듯 분명 어머니의 경제적 능력과 지원 덕에 나는 그나마 빠르게 일어설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렇기에 감사하고, 겸손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어머니에게 보답할 생각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훨씬 보수적이고 안정적으로 작은 행복들을 긁어모으는 중이다. 청사진은 있지만 너무 큰 것에 욕심내는 것이 무섭고 조심스럽다.

 

5. 모두가 이렇게 든든한 가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의 실패도 치명적일 것이고, 누군가는 이미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출발선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 40대 형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은 가정환경도 어려웠고, 하는 일마다 족족 안 풀렸고, 만나는 사람마다 사기를 쳤고, 현재는 담배와 맥주 한 캔이 유일한 낙이 되어 어렵게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 형님 나름의 노력의 일환으로 독서모임을 나갔는데, 거기선 자기 계발서를 분석까지 해가며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그 형님은 와 닿지 않는 성공의 비법들과 뻔한 말들에 질려버렸다며 진절머리를 냈다. 콘텐츠를 만드는 나의 직업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형님, 관점을 바꿔서 그런 자기 계발서가 왜 구린 건지에 대해서 충분히 재밌게 말씀하시는데 한 번 정리해보시면 재밌지 않을까요?"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례한 오지랖이었다 싶다.

 

6. 내가 바뀐 것, 그 형님이 본인을 '후퇴한 인간'이라 칭한 것은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긴커녕,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꾸역꾸역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 상황에서 도전과 실패는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 아닐까? 긍정의 메시지를 주는 메신저는 많다. 노홍철 역시 좋은 의미로 말했을 것이다, 27살의 내가 그랬듯. 내가 그렇게 해서 해냈으니, 너도 힘내길 바라! 그렇지만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 긍정과 도전에는 반드시 부정과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나, 환경, 하다못해 재능이라도 필요하다. 가장 큰 것은 운이라 생각하고. 그런 운이나 상황을 갖춘 사람만이 용기를 낼 수 있고, 실패를 경험 삼을 수 있다. 오늘이 지옥인 누군가에게는 이런 메시지가 조롱이나 모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저런 류의 얘기를 하려면, 상대를 봐가면서 하거나, 조금 더 배려심을 포함하도록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노홍철과 그 형님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보고 가다듬는다. 노력하자. 감사하자. 겸손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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