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시작한 <홍제동독서모임(가칭)>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특이한 사례 연구>로 더 길었으나,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제목이 상당히 짧아졌다. 번역의 과정에서 덜어진 것은 제목의 길이 뿐만이 아니다. 이미 모든 사람이 결말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빅토리아 시대에는 혁신적이었을 반전 장치들은 내게 상당히 허술하게 느껴졌고, 뭐 반대급부로 쉽게 책장이 넘어가긴 했다.


그럼에도 루이스 스티븐슨은 쉽사리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스포일러가 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작품의 관찰자인 어터슨 변호사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지킬 박사의 이중적인 생활을 관찰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아니 뭐라고 저렇게까지 해?" 라는 생각이 들만큼 집요하지만, 지킬 박사 입장에선 가장 가까운 벗에게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는 그 복잡미묘한 심정을 절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남과 철저한 거리를 두고자 하지만, 호기심을 이기긴 쉽지 않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여전히 공부중인 친구 덕분에, 작품의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쪽으로 흥미가 뻗어나면서 독서모임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시대상이 이렇게나 열심히 녹아들어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문학사나 영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은 물론, 원서로 읽으면서 작품에 배어있는 참맛을 느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길이도 짧고, 묘사도 적은 편이어서 속도를 낼 수 있다. 다음 소설은 <아몬드>로 정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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