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그 자체를 상징하는 나이키의 머큐리얼 시리즈는 나이키 축구화의 얼굴이다. 현존하는 나이키 사일로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대표한다. 이 글에서는 나이키 머큐리얼의 20년 역사를 되짚어본다.




1998 Mercurial


1998년, 세계 축구의 초신성으로 떠오른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지원하기 위한 첫 번째 오리지널 머큐리얼이 태어났다. 호나우두가 세계 축구계에 일으킨 파장만큼 머큐리얼의 파장도 거대했다. 축구화 외피부터 밑창까지 당시 기술로 구현 가능한 최대의 가벼움, 경주용 오토바이에서 착안한 외피의 무늬와 코팅은 전에 없던 시도였다. 호나우두는 머큐리얼과 함께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했고, 나이키 역시 축구화 시장에 뛰어든지 채 5년이 안돼 아디다스와 시장을 양분하는 거대 기업이 됐다.




2000 Mercurial Vapor Match


머큐리얼 매치는 경량화에 집중했다. 당시로는 말도 안되는 230그램짜리 가벼운 축구화를 만들어냈고, 아디다스나 푸마에 비해 축구화 역사가 늦었던 나이키로서는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프랑스가 98월드컵에 우승한 이후 대세가 된 간결한 패스와 창조적인 플레이, 2~3회의 적은 패스로 적진앞에까지 도달하는 간결한 축구를 위해서는 윙백들의 오버래핑과 선수들의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수였다. 머큐리얼 베이퍼는 윙백이나 윙어, 공격수의 빠른 쇄도에 적격인 축구화로 점점 각광받는다. 에나멜 광택 스우시는 당시의 코르테즈 라인에서 '볼록이'로 불리던 유행을 따르고 있다. 



2002 Mercurial Vapor


2002년은 우리에겐 월드컵으로 설명되는 한 해지만, 미국에서는 여자축구의 활약으로 기억되는 해다. Mia Hamm이나 Brandi Chastain같은 선수가 머큐리얼을 신고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미국 내에서 여자 축구는 물론 축구 시장 자체가 커지기 시작했다. 축구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가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며, 나이키 역시 미국 내수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축구에 대한 투자를 더욱 공격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다. 90분간 언제든 전력질주 할 수 있는 축구화, 준족인 선수에게 최적의 착용감을 제공하는 축구화로서 머큐리얼은 확실히 입지를 다졌다. 당시 월드컵에서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은색에 파란색 스우시가 새겨진 머큐리얼을 신고 활약한 것은 물론이다. 선수들에게 밑창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했으며, 더욱 가볍고, 더욱 편안해졌다.




2004 Mercurial Vapor II


머큐리얼 베이퍼 II 는 경량화와 가속성보다는 편안한 착용감에 집중했다. 선수들의 발이 지면과 닿을 때 가장 편안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그래서 쿠셔닝을 개선했고, 이는 이후 밑창에 에어를 넣는 등 다양한 시도로 이어진다. 더 이상 Ronaldo 라는 이름이 브라질리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지만, 아직까진 브라질의 호나우두나 포르투갈의 호날두나 모두 공통적으로 머큐리얼을 신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2006 Mercurial Vapor III


머큐리얼 베이퍼 III 는 파란색 외피에 흰색 스우시 조합을 밀었다. 약간의 광택이 새겨진 머큐리얼 베이퍼를 실제로 신은 친구들이 꽤나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기능 측면에서는 역시 편안한 착용감에 집중했으며, 지면과의 접촉보다는 신었을 때의 편안함을 더 강조해서 새로운 초극세사(Microfiber) 어퍼를 적용했다. 발의 모양에 축구화가 빨리 맞아들게, 길이 쉽게 들게 만들었다. 머큐리얼의 탄생과 함께한 호나우두는 정점에서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지만, 나이키는 그를 위한 스페셜 에디션 R9 라인을 만들기도 했고, 호날두는 점점 Ronaldo의 주인이자 나이키의 얼굴이라는 호나우두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2008 Mercurial SL Vapor IV 


머큐리얼 SL 베이퍼 IV는 현재까지 이어진 머큐리얼 디자인의 모태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머큐리얼의 모양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가볍고 빠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모자라서 이름에 SL (Super Light)까지 집어 넣기 시작했다. 타사의 축구화나 자사의 다른 사일로들과도 차이를 명확히 벌렸다. 



2008 Mercurial Vapor IV


4세대 머큐리얼의 키워드는 '파격' 이다. 하나의 가죽을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라 탄소섬유(Carbon fiber)를 재료로 얇은 실을 만들어 꿰어맞추기 시작했으며, 이는 동시대의 유니폼 라인에도 적용되었다. 재활용이 어려운 음료수 캔을 실로 뽑아 친환경적 유니폼을 만든다고 어필하던 기억이 난다. SL 모델은 최저 190그램까지 경량화에 성공했으며, 스터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을 탄소섬유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기능적으로는 축구화의 모든 부분으로 슈팅이 가능하도록 외부의 돌기나 돌출을 없앴다. 특히 나이키가 밀던 빨간색은 2008년 그라운드에서 가장 강렬한 색깔 중에 하나였다.



2009 Mercurial Vapor Superfly


드디어 새로운 축구화의 출시가 1년 단위로 짧아졌다. 제조사간의 경쟁이나 소비자의 지갑 털기가 더욱 치열해진 것이다. 수퍼플라이부터는 축구화의 외면보다는 내면과 기능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발에 더 감기는 최상의 핏감을 제공하려했다. 모든 선수들 각각의 발에 착 감기는 축구화가 수퍼플라이의 목표였다. 나이키는 초극세사에서 한차원 더 진화한 플라이와이어(Flywire)를 전면에 내세웠다. 탄소섬유로 만든 실들이 쐐기 모양으로 씨줄과 날줄이 되었고, 베틀에서 짜낸 듯한 질감이 도드라지면서도, 외부로 튀어나오는 부분은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2010 Mercurial Vapor Superfly II


수퍼플라이 II는 치타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2010월드컵을 맞아서 통일한 4가지 사일로의 디자인은 엄청난 인기였다. 선명한 주황과 보랏빛이 도는 은색의 조합이 꽤나 멋있었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월드컵에 초점을 맞춰 'WRITE THE FUTURE' 캠페인을 진행하며, 축구화 시장에서도 앞서나가고자 했다. 이미 호나우두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꿰찬 호날두와 떠오르는 신예, 네이마르의 피드백을 적극 수용해 다시 스피드에 초점을 맞췄다. 나이키 센스 (NIKE SENSE)라 이름 붙인 기술은 스터드가 지면의 상태에 따라 자동으로 변경되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기술을 실현했다. 무른 땅에서는 스터드가 조금 더 나오고, 거친 땅에서는 스터드가 들어가면서 최적의 스피드를 뿜어낼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착용해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당시 광고를 보며 '저게 가능한건가'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2011 Mercurial Vapor Superfly III


발이 무거워지거나 꼬인다는 건 곧 스피드의 상실과 공 점유에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작에서 스피드를 끌어올린 수퍼플라이 III는 다시 편안함에 집중했다. 외피 디자인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면서 미세한 돌기나 유격에서 발생하는 작은 불편함도 없애려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발을 편안하게 감싸면서 스피드를 최대로 설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나이키가 근본적인 고민에 들어가게 된 시리즈기도 하다. 기존의 기술로는 호날두를 비롯한 선수들의 부정적 피드백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나이키는 2008년부터 스피드와 안정성, 편안함 사이에서 계속 고민중이었다.



2012 Mercurial Vapor VIII


머큐리얼은 수퍼플라이를 떼고, 다시 베이퍼 8세대로 돌아왔다. 일단은 편안함. 축구화를 신고 있는지도 모를만큼 편안하고 가볍게 만들었다. 발 끝을 낮추고 축구화의 곡선을 인체공학적인 구조로 개선했다. 나이키는 자신있게 'Barely There (아주 어렵게, 겨우 그 곳에)' 를 외쳤고, 축구화를 신었는지는 잊어버릴 정도로 편하지만 강렬한 색상을 통해 축구화를 신고 있음을 알린다는 다소 오버스러운 표현을 썼다. 단순 빨강이 아니라 약간의 크림과 광택이 섞인 빨강은 기능의 발전이 한계에 부딛히자 나이키가 새로운 돌파구를 디자인으로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3 Mercurial Vapor IX


기능성 부분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는지, 나이키는 디자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아마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우주가 새겨진 폼포짓 농구화에서 착안했는지도 모른다. 축구공 오르뎀도 그랬듯 밤하늘과 우주의 별, 행성 같은 현란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물론 ACC (All Conditions Control) 기술을 통해 모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능성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2014 Mercurial Superfly IV


수퍼 플라이가 돌아왔다.  맨발 느낌을 주는 플라이니트 (Flyknit) 소재와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는 DF (Dynamic Fit)를 들고 나타난 나이키는 자신감이 넘쳤다. '불편하지 않을까?' 라는 모두의 편견을 깨고, 다이나믹 핏과 플라이니트는 다시 한 번 축구화의 혁신이 되었다. 나이키에서는 당시 런닝화에서 Free Run 시리즈를 통해 맨발에 가까운, 혹은 맨발에 신을 수 있는 운동화를 밀고 있었고 전 세계 운동화 시장 역시 맨발 신발에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지금은 맨발 운동의 효과가 과장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운동화들은 다시 충실한 쿠셔닝으로 선회하고 있지만, 플라이니트나 다이나믹 핏은 4년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축구화 발전의 최전선에서 진보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맨발과 쿠셔닝의 중점에서 축구화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의미가 있는 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8 Mercurial Superfly 360


지난 20여년간 나이키는 스피드와 편안함, 안정감 사이에서 꾸준히 고민했지만 확실히 발전했다. 의사표현이 확실한 최근의 대표 선수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했고, 나이키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다음과 같은 공통 분모를 발견했다. '길들일 시간 필요 없이 바로 발에 맞아드는 즉각성' '힘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스피드' '이를 가능케 하는 완벽한 핏' 등. 나이키는 플라이니트 소재를 외피 전면에 적용했고, 갑피, 밑창, 뒤꿈치 등 모든 신발 요소가 발을 360도로 완전하게 감싸도록 디자인했다. 신발을 신는다기 보다는 양말을 신는 것에 가까운, 제 2의 피부로서의 축구화를 구현한 것이다. 밑창 역시 플라이니트를 기본으로 하되, 스터드가 있는 부분에만 플레이트를 덧대 일종의 발톱처럼 필요한 부분에서만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스피드를 무기로 삼는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한 머큐리얼의 20년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그 사이 호나우두는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뚱뚱한 해설자가 되었고, 그 다음 주자인 호날두는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이끌며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득점왕은 누가 될지, 그 선수의 발에 어떤 축구화가 신겨져 있을지, 과연 그것이 머큐리얼일지 혹은 다른 사일로일지, 다른 제조사의 축구화일지, 결과가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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