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남고, 음악 들으면서 포토샵 노가다를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축구공 생각이 났다. 아마도 월드컵 공인구와 역사에 관련된 기사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는 월드컵 시즌이기 때문이려나? 나이키는 월드컵을 놓친 대신, EPL과 LFP 등의 주요 리그 공인구를 후원해왔고, 그 역사만 따라가면 나이키 축구공 라인의 줄기를 파악할 수 있다. 나이키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고, 공에 얽힌 내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것도 재밌었다. 가장 맘에 드는 시리즈는 역시 T90 Aerow. 축구를 가장 좋아하던 어린 때의 기억이 있어서일까... 공 이름 옆의 연도는 EPL에서 쓰인 연도를 기준으로 했다.






1. Nike Geo Merlin (2000~2002)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축구에 엄청난 재미를 붙였다.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쓸데없이 큰 키와 성실함?이 무기었고, 2002년에는 6학년이 되면서 학교 운동장의 지배자가 되었다. 운동장 스탠드나 큰 벽을 상대로 패스나 슛을 연습했고, 혼자 놀다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다시 축구하고 꽤나 열심히 했던 것 같다. MBC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서 해외 축구를 접하기 시작했는데, 월드컵 열기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나 유럽 주요 리그를 종종 볼 기회가 있었다. 챔피언스리그의 별이 박힌 공인구도 멋있었지만, 나이키 빠돌이로서 리그에서 사용되는 멀린이 정말 예뻐보였다. 당시의 나이키 CF 등에서 은색으로 번쩍이는 멀린이 정말 갖고팠던 기억이 난다. 으... 주소가 guti였던 다음 카페는 최근 생각나 찾아보니 사라졌던데, 카페에서 참 많은 영상을 챙겨보기도 했다. 물론 정점은 엄마 손을 잡고 응원을 나갔던 2002 월드컵과 아버지가 사주신 한국 국가대표 레플리카였다.





2. Nike T90 Aerow (2002~2008)



중학생이 되어 서울로 이사를 왔고, 다행히 가장 먼저 사귄 친구가 축구 광이었다. 이사 기념으로 아버지께서 사주신 베컴이 그려진 흰색 로테이로가 나의 자랑이었다. 세뱃돈으로 1년단위를 살만큼 용돈이 딱히 필요 없었던 내가 이 때부터 레플리카나 축구용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해외축구를 접할 수 있었고, 박지성의 맨유 진출 이후 고등학교 2학년 정도까지는 쭉 축구를 사랑했던 것 같다. 이 때는 나이키 CF를 수집하는 수준까지 갔는데, 아직도 가끔 챙겨보는, 앙리가 공을 밟고 90도 회전하는 장면이 이 시리즈를 사랑하게 만든 이유같다. (정작 이 CF에서는 다른 버전의 애로우가 나오지만..) Sergio Mendes와 보사노바에 눈뜨게 해준 '브라질 vs 포르투갈' CF도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PES 6인가를 다운받아서 패치를 처음해보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나름 손패치가 잘 되어있던 한국팀과, 축구화, 그리고 축구공을 고를 수 있었는데, 빨간색이 짜세지만 주황색도 좋아했다. 으... 그립다. 열심히 사모으던 베스트일레븐까지. 그리고 이후 고3때 위닝10과 플스방의 맛을 알아버리기 전까지. 항상 갖고싶고 좋아하던 축구공이었다. 애로우.






3. Nike T90 Omni (2008~2009)




2007년 아시안컵 영상을 찾아보니 애로우와 옴니 사이에 다른 공이 있거나 다음 세대인 아센테를 땡겨 쓴 것 같은데, EPL 순서는 이렇다고 하니... 그래서인지 박지성이 A매치에서 모는 것을 본 기억 외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사진 속 11시의 흰-빨-노 조합의 공을 친구 누가 실제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2008년이면 내가 마지막으로 축구를 열심히 했을 때, 그 때 정말 많이 차긴 했던 것 같다.




4. Nike T90 Ascente (2009~2010)



내가 공에 대해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썰을 갖고 있는 아센테 시리즈. 재수를 마치고 용돈이 꽤나 넉넉했던 나는 사진 7시 방향의 노란색 아센테 스킬볼과 축구공을 샀다. 2010 월드컵을 앞두고 대학 신입생 때는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축구 열기를 지폈다. 축구만 보면서 두 시간씩 얘기하기도 하고, 처음 먹기 시작한 술안주로 축구는 너무 적절했다. 한국 축구는 2002년부터 이어진 불꽃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었다. 비록 2010년 초반에 중국에게 지긴 했지만, 아시안컵과 월드컵에서 양박쌍용이 건재했고, 투지 넘치는 축구를 했다. 국대만 오면 캐리해버리는 박지성이 너무 좋았고, 즐겁게 축구를 볼 수 있었다.  최승돈 KBS 아나운서님 수업에서 라이브로 한일전 해설을 들었던 것은 대학교가 내게 준 몇 안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뼛속까지 크림슨 색이던 나보다 훨씬 더 크림슨 색이셨고,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것보다 더 짙었던 정말 멋진 분이었다. 나의 달콤한 대학 신입생활이 끝나가던 2010년 겨울, 박지성의 전성기가 지고 있었고, 나는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5시 방향의 공은 아센테 레드 스페셜 에디션이다. 드록바를 중심으로 전쟁을 멈추자였나 불치병을 치료하자였나 하여튼 'Save Lives' 캠페인을 진행하며 나이키가 밀었던 공이다. 저 빨간색 끈이 핏줄인가 뭐를 상징하는 신발끈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입대를 앞두고 재수학원 질문알바랑 조교알바를 하며 관련 CF를 챙겨보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는 축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고, 박지성의 노쇠화와 은퇴, 한국 축구의 부진까지 겹치며 딱히 재밌던 기억이 없어 사진만 정리했다.





5. Nike T90 Tracer (2010~2011)

6. Nike Seiltrio (2011~2012)

7. Nike Maxim (2012~2013)

8. Nike Incyte (2013~2014)

9. Nike Ordem (2014~2018)


▲ Nike T90 Tracer ▲


▲ Nike Seiltrio ▲

▲ Nike Maxim ▲



▲ Nike Incyte ▲



입대하자마자 훈련소에서 본 2011 아시안컵과 병장 때 숨 못쉬게 덥던 2012 베이징 올림픽을 제외하면 이 시기는 축구에 대한 기억 자체가 없다.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재밌을 전역 후의 20대 중, 후반이다 보니 축구에 쏟을 시간이 없기도 했거니와, 한국 축구 자체가 너무 못했다. 공들도 다 거기서 거기. 특히 오르뎀 시리즈는 나이키가 선을 넘어버린 느낌이었다. 축구공 내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니 겉모양으로 장난을 치는 느낌이었다. 박주영을 끝으로 제대로 된 공격수가 사라지고, 2014 월드컵 참사 등등 축구에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는 대표팀이기도 했고. 어느덧 나의 20대도 지고 있었다.




10. Nike Merlin (2018~)



나이키에서 6년 동안 사용한 오르뎀을 버리고 멀린으로의 회귀를 발표했다. 멀린은 2018/19 시즌부터 사용될 예정인데, 과거의 멀린보다 줄어든 다각형의 심플함이 돋보인다. 오르뎀보다는 조금 더 클래식한 축구공 같은 느낌? 이름만 같지 과거의 멀린과는 많이 다르다. 전통 축구공의 12패널이 아닌 4패널만 사용하여 제작, 적은 이음새로 더 좋은 컨트롤을 구현한다는데, 이제 공의 기술적인 발전은 될 만큼 됐다고 보기 때문에, 사실상 눈요기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 2018월드컵에 대한 나의 기대나 관심을 봤을 때, 축구공에 대한 얘깃거리가 생길 일도 없을 것 같아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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