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색채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인상, 색채에 대한 반응을 연구하는 학문을 '색채심리학'이라 한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백의민족의 순수성'을 밀어왔고, '빨간색'은 터부시 했다. 6.25 이후 빨간색은 곧 공산주의였고, '빨갱이'는 죽어 마땅한 대상이었으니까. 그런데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한 방에 빨간색이 갑자기 우리의 색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붉은 민족'인가?



인도에선 빨강이 공포, 불, 사랑, 아름다움 등 많은 것을 의미한다. 기혼 여성들의 이마에는 붉은 빈디가 찍혀있다. 중국 하면 딱 노랑과 빨강이 떠오른다. 독일의 작은 마을엔 노랑, 분홍, 연두 등 다양한 색깔이 쓰이지만 따뜻하게 조화롭다. 체코의 체스키 크롬로프는 주황 톤의 만화같은 마을이 작은 강에 폭 둘러쌓여있다. 


우리는 우리를 드러내는 색깔이 뭔지 모른다. 1년에 216만대씩 자동차를 찍어내는 나라에서 제일 잘 팔리는 색깔은 역시 무채색이다. 건물의 외벽과 간판은 오합지졸 개판 오분전이다. 색깔 뿐 아니라 폰트, 디자인 까지, 우리나라, 서울은 아직도 무슨 색이어야 할지를 모르고 헤매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서울식 고딕도 사용하고 I-SEOUL-U를 하고 있지만... 이는 곧 현대에서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역사와 전통으로 다져진 컬러가 아니라면, 우리의 컬러 하나를 정해 밀고 나가야 한다. 단순히 시내 버스의 색깔이 아닌, 우리의 아이덴티티와 모더니티의 색채를 정해야 한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색깔까지 정해야 하냐고? ('너의 미적감각을 혐오해, 평생 노란 바람막이에 빨간 등산복 바지나 입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갈수록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저마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색깔만큼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상징체계는 없거든. 노란색에 대해 극도로 거부감을 가진 어떤 정권과 어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도 하나의 색깔이 가지는 잠재적 힘에 대해 조금씩 자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하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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