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정권의 얼굴이었던 그가 위선자였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 정권에 대한 실망이 더 컸다. 평소에 밖에서는 일절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데, 오늘은 우연히 존경하는 형님 한 분과 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 견해를 밝히자, 그분께서는 내가 자한당의 프레임에 갇힌 것이라 말씀하셨고, 자한당이 조국을 깔게 없으니 자녀를 건드리는 것이며, 자한당 자녀들은 다를 것 같냐고 물으셨다. 그분의 의견을 존중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서 거기서 얘기를 멈췄다만, 나는 왜 지금 상황이 실망스러운지에 관해 혼자 정리해두고자 한다. 책의 요약을 제외하면 정치에 관한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도 웬만해선 하지 않았는데, 일기장 같은 블로그지만 누군가 볼까 두렵기도 하다.

1. 조국이 누구인가? 역사의 격변을 거쳐 들어선 새 정권의 얼굴이었다. 잘생기고, 똑똑하며, 유능한 데다가 학자의 길만 걸어온 고고함까지. 개인적으로는 그의 정의로움과 완벽함에 비하면 외려 그의 부나 몇 가지 흠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악의 편'에 서지 않은 정의의 기사 같았다. 기존의 낡은 운동권과 달리 지적이고 세련된 진보, 강남좌파의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조국 개인보다도 조국이 상징하는 이 정권이 더 멋지고, 기대됐다. '악'과 같던 기존의 보수나 무능했던 진보와 달리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그런 조국이, 알고보니 위선자였다. 그의 모든 논란은 그의 트위터로 반박이 가능했다. 2019년 초에 대유행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통해 알 수 있듯, 이제는 강남/강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식 문제였는데, 바로 그 자식 문제에서 가장 큰 결함이 발견됐다. 대입의 수시나 로스쿨과 각종 전문대학원 등의 갈래들이 '금수저' 자녀들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는 막연한 물음표가 점점 확신으로 바뀌는 시점이었다. 조국을 감싸느라 추해진 표창원 의원의 말*처럼 조국 본인이 아닌 가족의 논란들이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국이 대표하는 문재인 정권이 등장의 근거 역시 '최순실의 자식 정유라'에 대한 정의구현이 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표창원은 과거 법무부 장관과 달리 검찰이 과도한 수사를 하고 있으며, 부인과 딸, 친인척을 제외하면 후보자 본인에게는 논란이 없다는 쉴드를 쳤다. 틀렸고 추했다.

3. 최순실은 본인의 죄가 있는데, 조국은 본인의 죄가 없으므로 동일선상에서 자식 문제를 논해서는 안되는가? 비선실세로서 국정농단을 해서 수감된 최순실과 조국이 다른 결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개인에게 흠결이 없다는 것은 틀렸다. 웅동학원과 사모펀드, 그의 강남 아파트 매입 과정까지 단순 '논란'을 넘어선 잘못들이 분명 존재한다. 기득권으로서 그 정도는 전부 다 하고 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국이 그래서는 안된다. 왜? 조국은 트위터에서 정의의 사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표창원의 말대로 이번 논란이 그를 떼어놓고 처와 자녀들만의 단독범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 마침 장제원 의원의 래퍼 아들이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었다. 난 음주운전이 잠재적 살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가 최대한의 처벌을 받길 원한다. 그리고 장제원 역시 자식 교육을 똑바로 하지 못한 지탄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정도가 자식의 단독 범행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한이자 '몰랐다', '송구스럽다'라는 말이 허용되는 범위라고 생각하는 바다.

4. 조국의 가족에게 일어난 행운들과 선의들과 실수들이, 조국의 사회적 지위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나? 이 정도는 단순한 흠집내기인가? 결코 아니다. 내가 평범한 40대 아저씨라고 쳤을 때 내 자녀들이 그런 혜택을 받았다면, 나의 주변인들은 그걸 당연하게 혹은 좋은 일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조국이 '그 나물에 그 밥'임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권의 도덕성까지 의심하게 한다. 모두의 기대를 받고 탄생했던 새 정권의 칼날이 대한민국 수립 이후 쭉 녹슬고 이가 빠져있던 그 칼들과 다를 것이 없다니? 그럼에도 귀를 닫고 그 칼을 쓰고자 한다니?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대통령 취임사

5. 인사청문회를 유튜브로 잠깐씩 봤다. 정치 성향별로 확연히 다르고 굳어있는 채팅을 보며 나는 똑같은 의문과 환멸을 느꼈다. 내가 일베충과 태극기부대를 혐오하는 만큼이나 좌빨들을 혐오하게 만드는 채팅이었다. 머리가 텅텅 비어 깃발 아래 서는 것만 좋아하는 맹목적인 지지와 '우리도 내로남불좀 해보자'는 태도.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나라'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낡고 구태의연했던 진영 싸움의 반복이라고 하기에 이 정권은 너무 '새롭고, 다르며, 공정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정권을 잡았지만, '이건 나라냐'를 외치게 만들었다. 좌와 우가 아닌, 새롭고 공정한 '어떤 것'을 원한 사람들에게 주는 대답이 이것인가? (중도라는 표현은 너무 오염되어 쓰기 싫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 대통령 취임사

6. 반일감정도 덮을만큼 온 국민이 집중하고 있는 사안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는 진영논리라고 생각된다. 이 정권은 이 사태를 진영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뽑아놓은 윤석열과 검찰의 공격을 '검찰 쿠데타'로 규정한다. 혹시라도 조국이 법무부 장관이 되어 검찰개혁에 성공한다면 이 모든 것들이 대통령이 말했던 '공정한 과정'이 되는 것일까?

7. 조국 개인에게 느낀 실망감은 안희정에게 느꼈던 그것보다 훨씬 작고 보잘것 없다. 안희정의 책을 보물같이 여겼던 20대 초반의 나는 그의 몰락을 보며 진보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수 정치인에 기대를 건 것도 결코 아니다.) 진보든 좌빨이든 민주화 세력이든 운동권이든, 뭐라고 그들을 부르든 그들의 추악한 밑 낯에는 관심 없다. 그러나 이 정권도 결국 모양이 달랐을 뿐이라는 슬픈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앞에서 말했듯 이 정권은 지지할 맛이 나는 세력이었고, 멋있었고 새로웠기에 기대했다. 그들의 슬로건과 이미지에 흠뻑 빠졌다는 사실은 곧 내가 그들을 그만큼 믿고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을 거쳐 이렇게 식어버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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