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르내리던 길이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이제는 다른 길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어제 집으로 오는 길에 낯선 등산로가 있길래, 오늘은 꼭 그길로 가보고 싶었다. 내려올 때 헤매지 않기 위해 먼저 올라가 보기로 했다. 초코바와 음료수를 사서 버스를 타고 입구로 가려는데, 누가 한 중학교로 가는 길을 물으셨다.

사투리를 쓰는 60대로 추정되는 여자분이셨다. 그분이 찾으시는 학교는 내가 지루해하는 등산로의 중간에 있었다. 설명을 하려 했는데 잘 안돼서 그냥 모시고 같이 갔다. 그분은 학교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셨고, 내일 출근 전에 댁에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인지 알아보고자 걸어오셨다고 했다. 족히 한 시간은 되는 거리인데 참 씩씩하고 밝으셨다.

요즘 젊은 사람 답지 않다며 연신 고마워하셨다. '젊은 사람'이 아닌 건 맞지만, 피해를 주고받지 않는 선에서 누구와도 엮이기 싫어하는 난데 왜 그랬나 모르겠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 그런 거 같은데, 곧이곧대로 말하면 기분 나쁘실 거 같아서 엄마 생각이 났다고 했다. 뭐 때문인지는 잊어먹었는데 내 나이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당신 아들은 마흔이라고 하셨다. 내일 출근을 잘 하시길 응원해드리며 오르고 싶지 않던 길로 산에 올라갔다.

[비밀의 숲]을 들으며 걸었다. 이미 본 것이니 듣기만 해도 된다. 정점을 찍고 낯선 길로 내려왔다.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비장한 음악이 들리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바람도 불고 곧 비가 올 것 같아 휴일 아침인데 으스스했다. 낯선 길은 생각보다 불친절했다. 길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잘 찾아보면 길인 그런 식이었다. 계속 불안불안했는데 결국은 그 길이 맞았다. 처음에 내가 올라가고 싶었던 그 길로 내려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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